어머니와 아들을 떼어 놓은 일제의 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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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6-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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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거기에 나오는 인물은 영조, 정조, 혜경궁홍씨 그리고 주인공인 나중에 숙빈이 되는 성덕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의빈 성씨와 그 아들인 문효세자에 관련된 것입니다.


정조의 후궁인 의빈성씨는 여러번 유산 끝에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나이로 세 살, 만으로 한 살이 되던 해에 세자에 책봉이 됐고 그게 문효세자였습니다. 그러나 5세가 되던 해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정조는 효창원(서울 용산)에 묘를 썼습니다.


효창원문효세자묘.jpg

▲ 문효세자 묘

의빈성씨는 아들의 죽음에 병을 얻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아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죽기 전 의빈성씨는 아들 가까이 묻어주기를 희망했고 정조는 후궁은 정해진 곳에 따로 묻히는 관례를 깨고 문효세자와 백 보 떨어진 곳에 묻혔습니다.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은 100보 떨어진 곳에 묻혀서 애틋한 모자간의 정이 깃들어 있던 이곳이 일제강점기가 시작이 되자 일제는 이곳을 구용산고지라고 불렀고 병참기지를 만들어 훼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효창원에 골프장을 만들더니 나중에는 효창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무덤을 비롯한 조선 왕족의 무덤들을 파묘해서 서삼능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이때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사이에 백보라는 거리는 깨지고 상당히 먼 거리에 자리하게 됐다고 합니다.


의빈성씨묘.jpg

▲ 의빈성씨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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