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3M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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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광복절은
일제가 세계2 차대전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이날이 1945년 8월 15일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은 1945년 8월 15일에 끝났을까?
사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게 엉뚱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1944년 레이테만 해전만 하더라도
한 주에 항모를 한척씩 찍어내는 미국의 생산력 앞에서
일제 대본영조차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의 차이'를 체감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앞에서는 결사 항전을 외쳤던 일제 수뇌부들조차
즉 만일 일제가 전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걸 체감하고 항복을 한 거라면
1945년 8월 15일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미국은 일제가 무너질 때까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일요일 아침에 에게 기습당한 미국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점에서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상황이었기에
'jap' 이라는 말이 야비하게 뒤통수 치는 이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게 되고
사회 전역으로 '쪽바리는 씨를 말려야 한다' 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인종차별이 문제라는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이었으니
홀씨 제독 같은 경우엔 '더 많은 Japs들을 죽여라' 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결과 은 자국 약칭을 'JAP' 가 아니라 'JPN'으로 쓸 정도다
이 진주만 공습시
'내가 지금 해군력에서 압도적인 상황인데'
미국이 아무리 거대할지라도 한 방 후려갈기고 미군의 해군력을 궤멸시키면
미국은 결국 회담장으로 나올 거고
'에 대한 제재들을 해제'할 것이다 라고 전망했던 것과 달리
미국은 정말로 어를 지옥에서나 쓰게 만들 기세로
미국을 건드리면 X된다는 사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정리하고 나서
본토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뛰어넘는 병력을 상륙시키고
본토에 진격하여 을 물리적으로 멸망시킬 몰락 작전을 기획하기도 하였으나
본토에 대해 주기적으로 제초제를 투하하여
을 문자 그대로 '굶겨' 죽이려 고 하였다
미국이 계산하기로는 3년 정도만 고립시키고 주기적으로 제초제를 뿌린다면
별다른 미군 희생 없이 을 문자 그대로 절멸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을 정도다
즉 미국 입장에선 일제가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나치를 패망시킨 것보다 더 잔인할 정도로 즈려밟을 생각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1945년이 아니라 1946, 1947년 ...
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언제까지든 전쟁을 지속할 기세였다
즉 일제는 이미 1944년에 이길 수 없는 전쟁인 걸 알고 있었고
미국은 1946년이나 그 이루에도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할 의지가 충분한 게 명백했는데
어째서 일제는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미국이 요구하는 항복 조건과
일제가 수용할 수 있던 항복 조건이 평행을 달렸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조건 없는 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고
일제는 여러가지 조건을 내걸었으나
두 가지 조건 만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하나는 덴노를 정점으로 한 국체의 보존 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선의 포기였다'
전자는 제국의 정신적 기둥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던 거였지만
후자는 조선을 포기하는 순간 은 더 이상 제국이고 열강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의 면적은 혼슈와 비슷하고 인구는 3000만에 불과했지만
조선은행권 엔은 제국의 식민지들을 묶어주는 매개였으며
일제가 부설한 한반도 북구의 산업단지는 세계적인 수준이였으며
화학 공업 분야에서는 그 수준이 놀라울 수준이어서
당시 흥남의 조선 질소 비료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농경지는 본토와 맞먹는 수준으로
제국의 신민들을 먹여 살릴 식량 안보의 필수적인 역활이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인식하고
조선인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던 것과 별개로
조선은 제국에서 분리 될 수 없는 일부로 생각했다
위에 말했던 '1억 총옥쇄' 의 경우
당시 본토의 인구는 7천만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나머지 3천만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했다는 의미기에
일제는 자기네가 망하면 망했지
조선의 독립을 용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 식민 지배국이 피지배국에 집착하여
절대 놓아주지 않으려고 온갖 추한 꼴을 다 보여준 사례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했던 사례를 꼽는데
일제가 조선에 보인 집착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광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러다보니 일제와 연합군의 강화 논의는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945년 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상황이 크게 바뀌었는데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비록 뛰어난 지도력으로
미국 역사상 4선을 역임한 인물이지만
말년의 루즈벨트는 총명함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루즈벨트는 치매로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그 결과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다 잡아놓고
스탈린에게 너무나 많은 양보를 했다
그 중 하나가 만주에 있던 일제 관동군의 병력이 100만이라는 말에
소련이 이를 분쇄하겠다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 것인데
루즈벨트 4기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그야말로 얼굴 마담 수준이었기에
당시 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접근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루즈벨트의 죽음으로 갑작스럽게 대통령직을 승계받고 나서
루즈벨트의 대외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미국은 1945년 초 태평양 전쟁의 승기를 잡고 나서
한반도 역시 미국이 진공할 구상을 하고 있었으나
이미 루즈벨트가 만주에 있는 일제 관동군 수가 100만이라는 보고에
1945년 초 얄타 회담에서 독일이 항복하고 나서 3개월 후
소련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비밀리에 합의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제를 물리적으로 절멸시킨다는
기존의 노선을 포기하고
에 핵무기를 투하함으로서
일제가 항복하게끔 유도하려고 하였다
이에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트리니티 실험을
당초보다 서둘러서 진행했고
일제는 '1억 총옥쇄' 등의 결사 항전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이런 '독기' 에 질린 연합군이 강화하자고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일제 입장에선 그렇게 자국민들이 갈려나가도
일제는 자국민들을 국체를 지키기 위한 도구이자
그냥 머릿수만 채우면 되는 개돼지들로 보았기에
이들이 희생되는 건 눈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도쿄 대공습에서 10만 넘는 인들이 불타 죽었지만
일제 수뇌부 입장에선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일제는 '국체' 를 보존하고 수뇌부의 안위만 지킬 수 있다면
'1억 총옥쇄' 라며 자국민들을 얼마든지 옥쇄하자고 선동하면서 버틸 기세였다
그렇기에 미국은 일제가 무조건 항복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보이' 를 투하한다
이렇게 원자폭탄을 투하했음에도 일제로부터 별다른 반응이 없자
미국은 원자폭탄이 한 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원자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 맨'을 투하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소련이 얄타 회담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소련군은 파죽지세로 만주에 있던 광동군을 격파해버리고
한반도 북부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순식간에 장악하고
본토인 훗카이도에 상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전쟁이 길어지면 은 소련에세 점령되어 공산화 되거나
독일과 한국이 그랬던 것 처럼
미국과 소련에게 찢겨질 운명이 될 터였다
이렇게 되자 일제 수뇌부들은
자국민들이 그렇게 의미 없이 희생될 때에는 끄떡도 하지 않다가
항전해봐야 소련만 좋은 꼴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는
포츠담 회담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들이 머리를 굴린 결과
만일 본토에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만 상륙을 한다면
악질 전범을 제외한 이들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참작을 받을 수 있지만
소련군이 본토를 장악한다면
덴노를 비롯한 일제 수뇌부 전부가 교수대에 오를 판이었기에
그럴 바에야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항복하는 게
자신들 몸 보신에 낮다는 판단에서였다
잔주에서 일제 고위직들은 소련군이 쳐들어오자
만주에 있던 인들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만 도망가서
남겨진 인들이 학살과 강간 약탈에 노출되었던 일처럼
일제 수뇌부들은 최후까지 비겁하고 쓰레기 같은 모습 뿐이었다
비록 일제가 포츠담 선언에 따라 무조건 항복하는 걸로 결정난 상황에서
상황 판단 못하고 저항하자는 멍청이들이 있긴 했지만
일제 수뇌부들 대부분이 이러한 멍청이들에 호응하지 않았기에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일제 수뇌부들이 의식했던 걸지는 모르겠지만
소련이 진주한 곳은 어김없이 학살과 약탈 공산화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들의 몸보신이 그나마 인들에게 나은 미래를 주긴 했다는 점에서 씁쓸할 따름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일제가 일주일만 일찍 항복했다면
한반도에 소련군이 진주하지 않았기에 분단이 되지도 않았을 거고
분단이 없었기에 6.25 같은 비극 없이 제대로 된 통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을 것이고
만일 일제가 끝까지 저항했더라면
포츠담 선언 당시
미군이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전시 벌어질 일에 대해 전망했던 것처럼
한반도는 소련에게 장악당하는 꼬라지가 되었을 거라는 점에서
일제 스스로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째서 이러한 무의미한 발악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지
이에 대해 일제의 항복 과정에 대해 되새겨 보기 위해서 글을 써 보았다
곱씹어 볼 수록 자국민들을 갈아나가면서
자신들의 몸보신을 보장받으려고 했던 일제 수뇌부들의 행태가
정말로 쓰레기같고 이 때문에 한반도가 희생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깝고 슬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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